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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베이징에는 이십여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거의 모두 각자의 용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서북방의 서직문은 황가(황가)에게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매일 새벽마다 옥천산 운천산의 군대가 서직문을 지나 입궁을 하는데,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성내의 백성도 물을 마시지만, 공교롭게도 베이징에는 식용수가 나오는 우물이 적었다. 그래서 아쉬운데로 질 나쁜 우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 옛날 북경의 남단은 용정문부터 시작을 하는데, 북쪽으로 오려면 두 활가(활가)의 건물을 지나야 한다. 동쪽은 천단, 서쪽은 선농단, 모두 황제가 매년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다시 북쪽에서 천교를 질러가면, 주시구가 나온다. 다시 북쪽을 바라보면, 웅장한 전문(전문) 성루를 볼수 있다. 이 성루는 아주 높고 크다. 왜냐하면 당초 외성(외성)만이 있었을 때 전문은 경성의 남대문이었고, 막중한 방어의 임무를 맡았으니 당연히 성루는 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루의 북쪽은 정양루인데. 이 곳은 내.외성의 경계소였다. 지리 위치는 당연히 중요했고, 왕래하는 사감 역시 무척 많았다.
정양문의 북쪽에는 작지만 중요한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명칭이 왕조가 바뀔 때 마다 계속 바뀌었다. 청조에는 대청문, 명조에는 대명문, 민국시대에는 중화문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이미 평지가 되었지만, 이문은 옛날 황궁의 정문이었고 들어가면 `정`자 형의 광장을 볼 수 있었다. 이 광장은 옛날에는 `천보랑`이라 불렀으며 신하가 조정에 들어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청보랑`에 서있으면, 북쪽의 천안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 만큼 웅장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