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파울러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접한 것은 신입교사 교육 기간인 것으로 기억난다. 야학 한편에 있는 책꽂이에 출판사가 아닌 타자로 쳐서 조잡하기 되어 있고, 복사도 엉망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카톡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처음으로 페다고지가 나온 것이 아닐까 본다. 신입 교사 때에는 야학 관련 자료는 닥치는 대로, 무조건적으로 읽었는데 그 중의 하나 였다. 당시 내가 받아 온 교육과의 목적이 다르다는데 에서 오는 괴리감이 많이 작용 한 것으로 안다. 물론 당시에는 대화식 수업 방법론이니, 자유의 실천으로써의 교육이니 하는 것들을 실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고민들이 지속적이지는 못하지만, 야학 공간에서는 항시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였다.
야학에서의 교육이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가, 그럼 누구의 편에서 실천되어야 하는가 등은 혼란스러운 부분이었고, 야학에서의 현실과 차이 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프레이리를 넘어서 나가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이내 결정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가끔씩 야학에서의 교육 자료로써의 인용과 토론이 실제로의 깊이 있는 프레이리의 사상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결정물이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이 이제 70년대와 다르고, 이 지점에서 버려야 할 낡은 사상 일수도 있는 프레이리를, 어찌되었던 재검토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은 다수의 야학 활동가의 그의 사상과 이론을 점검하지 못한 책임 일수도 있다. 90년대의 많은 이데오르기의 변화는 사상의 다양화보다는 편협한 기회주의적 사상만이 판치는 것이 현실적이 아닐까 본다. 이 글은 애초에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서평의 형태로 쓰려고 시도했는데, 너무 가볍다는 생각에서 좀더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까 하는 이유로써 진행되었다. 그가 가지는 사상이 야학에서의 현재적 의미를 재검토하고, 비판적 대안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상과 실천을 재평가에서 오는 여러 가지의 한계는 전적으로 쓴 이의 역량 부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