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사립대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1) 기독교계 사학의 대학설립운동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상황은 이미 대학수준의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던 학교로 `보성전문학교`를 비롯하여, 평양에 설립된 `숭실학당 대학 부`, `이화학당 대학과` 그리고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교` 등이 있었다. 하지 만 기독교계 선교사들에 의한 사학은 일제시대 내내 학교에서의 종교교육 실시에 대한 갈등을 보였는데, 결국 1935년 11월에 평양 숭실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기독교계와 교육계 전체에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고, 1938년에는 이로 인해 장로회파가 경영하는 18개 교의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는 적산으로 취급되어 선교계 학교들이 몰수되는 등 더 이상 대학으로 발전하지 못하 고 말았다.
(2) 민립대학 설립운동
민립대학 운동은, 사람들을 계몽시키면서 민족의 독립을 국내외에 호소하는 `언론투쟁`과 학교교육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교육립국` 의 투쟁방법과 관련하여 생겨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이미 대한제국 말기부터 나 타나고 있다. 1907년 『황성신문』과『대한매일신보』그리고 보성사에 본부를 두고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식민지배를 받게 되며 더 이상 외채를 갚는 것 이 무의미하게 되자, 결국 이 기금의 용도를 `민간이 경영하는 민립대학의 설립`으 로 바꾸어 `민립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이 제 1 차 민립대학 설립의 시도는 일제하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민립대학 운동은, 사람들을 계몽시키면서 민족의 독립을 국내외에 호소하는 `언론투쟁`과 학교교육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교육립국` 의 투쟁방법과 관련하여 생겨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이미 대한제국 말기부터 나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