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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789년 5월 베르사이유에서 3부회가 소집되었고, 이제까지 국왕과 귀족사이의 투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부르주아지가 혁명에 뛰어들게 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3부회의 소집을 계기로 하여 대표선출과 투표방법의 문제에서 귀족과 부르조아지간에 갈등과 대립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고, 고등법원의 귀족들은 3부회가 “각 계급의 동일한 대표수와 서로 다른 투표방법”을 갖는다고 주장하여 3부회에서 특권계급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혁명적 부르조아지가 대다수였던 3부회의 제 3계급은 2배로 대표수를 증원할 것과 투표방법에서도 귀족계급이 주장하는 신분별표결(Par Ordre)에 반대하여 머리수표결(Par tete)을 주장함으로써 실질적인 부르조아지 혁명(Revolution Bourgeoisie)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Ⅲ. 부르조아지 혁명과정에서 상퀼로트의 원조와 요구
부르봉 왕가의 파산이 다가오는 가운데 1614년 이래 소집되지 않고 있던 삼부회가 과세 동의를 위해 소집되었으나 표결방법 문제로 결렬되었다. 1, 2신분은 부별투표를 주장하였으나 제 3신분은 하급 성직자나 진보적 귀족들의 지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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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현웅, 「프랑스 혁명기의 상퀼로트(Sans - Culotte)에 관한 일고찰」, 단국대학교 대학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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