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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지문학에 근거하여 세계정세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의식의 각성을 통해서 근대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육당은 이와 같은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기보다는 전통을 보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시도로 나아갔으며, 역사 연구에 치중하게 되고 지리에 대한 관심 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머물러 버리고 말았다.
이후 육당이 역사에 대한 관심 안에서 지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당시 광문회에서 발간하기 시작하였던 지리 분야 저술을 살펴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1910년 12월 초에 설립된 광문회의 첫 사업이 택리지 발간이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 조선광문회의 설립 취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재를 보호·발굴·연구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의도는 그 후 이루어진 일련의 사업을 통하여 착실히 추진되었다. 특히 택리지를 활자화하여 발간하면서 우리 나라 인문지리학의 시초로서 찬사를 보냈다. 그 외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소개하였는데,. 여기에는 실학파의 저술뿐 아니라 기행류도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가 「산경표」 발간이었다. 모처럼 개방된 문을 통하여 진정한 새로움이 들어오기도 전에 급격히 밀어닥친 민족의 위기에 직면해서 육당의 민족의식은 조선정신으로 적극화되었으며, 이제 바다의 광활성보다는 산의 폐쇄성을 택하게 되었다. 육당의 지리적 관심이 바다를 통해 나타났듯이 그의 역사적 관심은 산에 집중되었다. 조선정신은 육당으로 하여금 바다를 떠나 산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이로부터 국토와 풍물과 문화의 찬미로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