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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원의 이론 : “봉건적 생산 양식은 고대 사회의 말기에 이미 성립되어 공동체적 토지 소유에는 그 맹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한 농노제 내지예농제는 아직 봉건적 토지 소유자가 정치 권력의 조직자로서 결정적으로 등장한 때를 가지고 그 성립으 획기로 한다” 하여 조선의 성립 부터를 중세 사회로 보는 이론적 바탕을 제시했다.
그가 조선 사회를 중세 봉건 사회로 보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먼저 상 공업면에 있어서는 “고려 후기에 있어서 봉건 지주의 손에서 도망하 여 자유롭게 된 농노들이 끊임없이 도시에 유입한다. 도시에 유입한 농노는 약간으 수도구 기타의 자본과 노동력이 유일한 제산이다. 계 속해서 유입하는, 자유로왔던 농노에 대하여 여기에 일정한 수공업자 (동시에 상인을 겸한다)의 동업 조합이 이루어진다......이들이 봉건 적 도제제도(길드)의 상업 및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했고, 다음 토지 문제에 있어서는 고려말의 사전개혁이 “토지 그것에 대한 개혁 이 아니라 농민의 주거와 이동을 영구히 일정한 토지에 예속한 것이다. 즉 이것은 거주지의 이동의 자유를 주지 않는 농노 제도의 하나의특징인 것이다” 하여 사전법으로 중세 사회 성립의 중요한 계기로 보았다.
그는 또 조손 왕조 사회가 농업 노동과 수공업 노동과의 결합에 기초 한 자연 경제 테제였으며, 그것이 봉건 사회 존립의 제 1의 조건이었다 하고, 최대의 토지 소유자인 국가의 봉건적 토지 소유와 그것의 농민에의 분배는 봉건 국가가 …
그는 또 조손 왕조 사회가 농업 노동과 수공업 노동과의 결합에 기초 한 자연 경제 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