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오랜 세월 동안 희미해져 버린 추억이 그 복잡한 감정을 서로의 가슴속에 접어 두게 했다. 그 옛날 서로에게 향하던 애절한 그리움 따위는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만큼 두 사람은 서로 똑같이 나이를 먹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복잡하고 피곤한 방식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소설 같은 우연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이 훨씬 달콤할지도 모른다. 미묘한 인생의 진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를 거절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다베는 긴을 살해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여자를 죽이는 것도 죄가 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여자 한두 명 정도 죽인들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때문에 죄인의 굴레를 뒤집어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바보 같은 짓이라 여겨졌다. 기껏해야 한갓 벌레나 마찬가지인 늙은 여자가 아닌가! 이 여자는 그 어떤 것에도 동요되지 않은 채,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장롱 속에는 50년 동안 모아 둔 기모노가 가득 들어 있을 것이다. 옛날 미셸이라는 프랑스인에게 받은 반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보석류도 잔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집도 그녀의 집이 분명할 것이다. 벙어리 하녀를 두고 있는 여자 하나 정도 살해한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공상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다베는 그녀에게 빠져 전쟁이 한창일 때도 밀회를 계속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답답하고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취기가 돈 탓인지 눈앞에 있는 긴의 모습이 자신의 피부 속으로 묘하게 저며 온다. 그녀를 만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긴과의 옛일들이 두드러지게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