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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주의깊게 연구한 시인이며 그로부터 얻어낸 시적 양식은 그 아름다움으로 단테에게 많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단테는 수년간 베르길리우스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베르길리우스의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는 오랫동안 침묵한 나머지 미약해보였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한 사람의 명문가를 넘어선 로마 제국의 시인이자 단테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며 현자(saggio), 혹은 도덕적 스승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긴 하나 신의 은총을 받은 특사로서, 그가 돌아온 것은 일찍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 더 소박했던 신앙들이 소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물론 베르길리우스 혼자로는 충분치 못했다. 그러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거부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는 슬프게도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즉 그의 의식 어디에서도 역사의 지배 과정으로부터 개인적인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추방객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도덕적 교훈을 베풀어주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 자신의 시의 주제이자 단테의 시의 주제였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역사의 과정에 대한 믿음을 고수했으며 로마제국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역사의 과정은 그에게 깊은 위안이 되었다. 반면 단테는 역사를 초월하는 인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역사가 그에게는 악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천국편〉에서는 진정한 영웅적 실현이 이루어진다. 단테의 시는 죽음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인물들을 묘사한다. 그들의 역사적 영향은 계속되어 그들의 모든 행위는 추종자들에게 경이감과 동화(同化)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고조부 카차구이다, 성 프란키스쿠스, 성 도미니쿠스, 성 베르나르두스 같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단테는 자신을 승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천국편〉은 실현과 완성의 시이다. 그것은 앞의 2편에 이미 묘사되었던 것을 실현하고 있으며, 미학적으로는 기대와 회고로 이루어진 정교한 시체계를 완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