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신정치의 전개
신정부는 1873년 1월, 만 20세의 남자를 징병하는 징병령을 공포하여, 구미열강을 모방한 국민군대를 창설하였다. 이로서 국력 의 군사적 기초가 만들어졌다. 사민평등과 징병령에 의해 특권을 상실한 사족들의 불만은 반란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반란인 1877년의 세이난(西南)전쟁도 국민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신정부는 재원의 안정을 위해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지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지주가 토지세를 국가에 납부하게 하였다.
한편 신정부는 외국기술자를 초빙하고 기계를 수입하여 근대산업의 육성을 꾀하였다. 조선소·병기공장·광산·생사공장·면사 방적공장등, 많은 관영공장을 만들어, 정부의 공부성·내무성을 통해 산업을 보호·육성하였다. 또한 교통·통신의 발달을 위해 1871년에 서양식 우편제도를 발족시키고 1872년에는 철도를 부설하였고, 알본근해의 해운권의 확립과 군사수송을 위해 해운회사를 보호하였다. 또한 원·전을 단위로 하는 새 경화를 만들고 국립은행을 설립하였으며, 1882년 에는 일본은행을 만들어 금융과 지폐발행을 맡긴다. 그러나 재정부담에 허덕이던 정부는 1880년대에 민영공장이 성공하자, 관영공장을 불하하고 민영 사업을 보호하였다. 따라서 18 90년대에는 민영의 방적·철도회사가 계속 설립되었으며, 미츠이(三井)·이와자키(岩崎, 후에 三菱)등과 같은 정상(政商)들도 등 장하게 되었다.
(4) 유신초기의 서구화
신정부가 국민교육을 위해 문부성을 신설하여 소학교 교육에 주력한 결과 전국에 2만이상의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국립대 학에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학문의 발달을 꾀하였으며, 사범교육·여자교육·산업교육을 위한 전문학교도 설립하였다. 한편 케 이오(慶應)의숙, 도시샤(同志社)등의 사립학교도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