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다다이즘이란?(Dadaism)
다다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어 누구라고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얿지만, 그것이 탄생된 장소는 반박의 여지없이 취리히이다.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이 도시에는 몇몇 독일인들이 피신해 있었고 그 중에는 시테르라고 하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카바레를 열었다. 며칠후 휴고 발과 그의 동향인 리하르트 휄젠벡, 루마니아에서 이민온 트리스탕 짜라와 마르셀 안코, 알자스인인 쟝 아르프등이 모여 다다를 탄생시켰다. 다다라는 단어는 휴고 발이<카바레 볼테르>라는 제목으로 취리히에서 발간하던 “문학 및 예술에 관한 글 모음”에 1916년 5월 처음으로 인쇄되어 발표되었다.역시 1916년에는 트리스탕 짜라의 <안티퍼린씨의 최초의 천상여행>과 쟝 아르프가 삽화를 그린 휄젠백의 <환상적인기도>등 두권의 팩을 펴냄으로써 다다 총서도 시작 되었다.이어서 1917년 3월에는 다다 화랑이 취리히에 문을 열었다.짜라는 다다운동 진행에 큰역활을 했다. 그는 1918년에 <다다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서 그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으며, 1919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로는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무대에서 다다가 빛을 발할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물론 스켄들과 논쟁을 도발시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다는 전통에 반대하고, 합리적인 것에 반대하며, 제도에 반대하고, 모든 것을 반대한다. 그기본적 원칙은 부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짜리와 앙드레 브르통은 짧은 기간동안의 광란적 공감기를 보낸후 곧 분열된 것이며, 그이후 브르통은 몇몇 충성스러운 친구들과 함께 건설적인 운동인 초현실주의를 창설하게 되었다.
다다운동은 1919년 취리히에 머물렀던 프할시스 피카비아에 의해 미술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의 성상 파과적인 예술관도 다다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