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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론의 형성과 발전’의 검토
이것은 논문의 머리말에 해당된다. 첫 문단에 발해에 대한 그의 견해를 간단히 밝혔다. 이는 중국의 발해 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결론 부분에 써야 좋겠는데 불쑥 논문의 맨 첫머리에 나와서 손대기에 망설여진다. 그래서 이 글의 끝에서 자세히 언급하려고 한다.
그는 ‘남북국시대론’의 시말에 관해서 정리하는데도 앞서 지적한 방식을 썼다. 맨 처음에 ‘남북국시대론’의 시초를 언급하고, ‘이조후기 실학파 가운데 일부가 민족 의식과 국가 관념을 강렬히 구사하여 거리낌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새 학설을 만들어서, 발해는 신라의 북국이니 마땅히 발해사를 조선사 속에 써넣어야 한다고 했다.’ 왕건군, 「‘남북국시대론’규류」ꡔ사회과학전선ꡕ, 1995·2, pp.174~180.
라고 했다.
실학자들이 강렬한 민족 의식과 국가 관념을 가졌다고 한 점이 의문이다. 물론 실학의 특성 가운데가 하나가 민족성이라고 한다. 실학을 처음 본격적으로 연구한 때가 일제강점기다. 민족 존폐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민족 정신을 강조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던 때여서 자연히 실학자들의 저술에서 민족성을 강조할 것들을 찾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근대 국민국가 시대의 민족 의식이나 국가 관념과 부합한다고 보는 것은 모순이다. 국가와 민족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그런 의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들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새로 학설을 만든 것이 바로 ‘남북국시대론’이라고 했다. 그가 남북국시대론을 주창한 실학자를 선진적인 인물로 칭송할 리는 없으니, 그 자신이 근대 국민국가 시대 이래의 민족과 국가 관념에 얽매어서 이렇게 부적절한 언급을 했다고 본다. 과거의 중국 조선 일본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이런 연구를 한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