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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645년의 쿠테타를 통해 백제계 도래씨족 소가씨의 천하를 종식시키고 다이카개신
을 단행한 개신정부의 주역들은 종래 백제 일변도였던 대외정책에서 친신라 정책으로
외교노선을 전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친신라정책은 코토쿠천황[孝德天皇]이 죽은 다음
해인 655년, 쿠테타로 물러난 코교쿠여제[皇極女帝]가 아들인 나카노오에[中大兄]의 옹립
으로 다시 즉위하면서<사이메이여제> 10년만에 끝을 맺는다. 수도도 나니와궁[難波宮]
에서 다시 아스카로 옮겨졌다. 백제계 씨족의 반격으로 개신의 주역들이 물러나고 다시
친백제계 세력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사이메이천황[齊明天皇]은 백제와의 일체화를 굳게 다졌으나, 660년 백제는 당나
라와 신라의 협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때 백제 유민들은 저항을 계속하는 한편, 사이
메이조정에 구원군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사이메이는 몸소 백제 구원군을 이끌고 큐
슈까지 가지만 아사쿠라궁[朝倉宮]에서 병사하고, 황태자인 나카노오에가 정무를 보며 구
원군의 본대를 백제로 보냈다. 그러나 663년 8월 이들 구원군은 금강전투에서 패퇴하고
말았다. 그 뒤 천황에 즉위한 나카노오에<텐지천황 天智天皇>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한국식 산성을 쌓고 쓰시마를 제1선으로 아스카가 있는 야마토 지방까지 5중
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한편, 백제 망명귀족들로 자신의 주변을 굳게 다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