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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보수적이라고 불신하고 민중적인 자코뱅 독재의 확립을 바랐던 사회주의자들은 선거날짜를 늦추기 위하여 임시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거꾸로 온건파는 대규모의 공화파 결집하여 가급적이면 빨리 선거를 치르기를 바랐다. 마침내 선거가 4. 23~ 24일 실시되었다.
◎ 제헌의회시기(1848. 5. 4~1849. 5. 28)
5월 10일 제헌의회 집행위원회가 선출되고 집행위원회는 각 부처장관을 임명했다. 5월 15일 국민의회의 해산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무장시위가 한때 시청을 점령하였으나 국민방위군에게 진압되었다. 6월 21일 젊은 독신의 노동자들은 군대에 입대해야하고 나머지는 조별로 편성되어 솔로뉴의 개간에 투입될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한 결정은 노동자들을 격분시켰다. 2월 혁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속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면서 국민작업장들의 노동자들은 실업자들, 소상점주들, 일부 국민방위대의 도움을 받아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보수적인 방향전환의 최초의 징후가 나타날 즈음 의회는 헌법을 기초하여 11월 12에 최종적으로 통과시켰다. 주요한 여러자유가 인정되었지만 특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