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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 국민복이 강요된 시기로 `몸뻬` 바지와 간호사복 같은 간단복이 전형적인 의상이 됐다.
해방직후 미군정기엔 어깨에 솜방석 패드를 높게 넣은 밀리터리 룩과 퍼머넌트 헤어스타일이 유행을 탔고 영국산 복지로 양복을 지어 입은 `마카오 신사`가 첨단패션을 상징하는 멋쟁이로 통했다.
전쟁 직후 디자이너 부띠끄들이 모여든 명동이 패션 1번지로 떠올랐고 이들의 주도로 하이패션이 싹텄다.
타이트한 스커트, 굽 높은 하이힐에 나일론 스타킹이 멋쟁이 여성들의 상징이었으며 맘보바지가 크게 유행했다.
특히 1956년 영화 <자유부인>의 히트로 외국산 벨벳소재 의상이 날개돋힌 듯 팔려 여성들의 사치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무릎 위 얼마 높이까지 치마가 올라갔는 지를 자로 잰 정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미니 스커트가 젊은 여성들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누리는 등 사람들의 의상에 대한 개념이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환된 시점이다.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노슬리브 드레스, 화려한 프린트 셔츠 등이 히트 아이템이었으며 과장된 형태의 부풀린 헤어스타일과 남성들의 장발이 크게 유행했다.
섬유산업이 호황을 보이면서 국내 패션사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 제일모직, LG 패션, 코오롱 패션 등 대기업의 기성복 시장 진출, 유행의 중심을 디자이너 부띠끄에서 기성복으로 이동하고 패션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60년대말 미니스커트와 핫팬츠에 이어 티셔츠와 진바지가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옷차림이 됐고 여성들 사이에선 바지통이 넓은 판탈롱과 키를 커보이게 하는 통굽 구두가 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