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자본주의의 얼개 : 코와 틈
1. 자본주의와 평화
필자의 사고에 따라 범주화시키건대, 기 소르망 사상의 바탕그림은 `체제(시스템)의 융통성`이다. 그의 많은 강연들과 저서 가운데서도, 이 같은 그의 사상적 밑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1994년도 저작 [자본주의 종말과 새 세기]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에피그램으로 시작한다.
`어진 군주는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른다.`
오늘날 군주는 누구일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배분史를 보라. 온도차이에 따라 파란색에서 빨간 색까지 띠로 표시되는 기상 프로그램의 컴퓨터 그래픽처럼, 힘을 빨간 색으로 처리한 `힘의 지역적 배분도`를 그린 후 이를 역사적 파노라마로 만든 연속화면을 상상해 봐도 좋다. 역사상 오늘날만큼 빨간 색(=힘)이 골고루 퍼져있던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힘의 주체들은 한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은 게 아니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지 아니한가. 태평양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비행기 속의 빨강점들도 여럿 보인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남에서 북으로. 지금은 언제 어디서 빨간 색이 불쑥 튀어나올지조차 모른다. 자기의 삶을 자기가 결정하거나 자기가 이룩한 자기의 세계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계획되지도 예고되지도 않은 숨은 강자들의 존재!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近세기만큼 독점에 대한 논란과 시비가 논리와 윤리도덕을 모조리 동원해가며 일어났던 적도 물론 없었다. 허나 45억이 똑같이 돈과 권력을 나눠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절대독점이라고 얘기할 순 없듯, 역사적인 고려 없이 힘의 독점현상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다. 단언컨대,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비독점-분권화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