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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테스트의 시초
지능을 측정하는 최초의 시도는 금세기초 프랑스의 심리학자 비네와 시몽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문교장관이 파리의 지능장애자 교육에 관한 연구위원회를 설치하던 바로 그때였다. 그 이후 측정된 지능이 어느 정도로 추전이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과해 심리학자들은 매우 격한 논쟁을 거듭해 왔다. 이에 관한 비네 자신의 견해는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1909년의 기록에 의하면 명백하다.
- 최근의 철학자들 중에는 개인의 지능을 마치 어느 고정된 분량과 같이 생각하는 통탄스런 견해를 사실상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이러한 못된 비관론에 항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의 마음은 전답과 같은 것이어서 노련한 농민들은 전답에 따라 경작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 오늘날 사막에서도 풍요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대지가 생겨났다. 특히 이러한 의미에서 아이들의 지능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학습의 능력인 것이면 이것을 사람들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
영국에서는 비네의 발상이 프란시스 골튼과 그의 제자인 시빌 바트에 이해 계승되었다. 그 이후 IQ의 측정과 우생학적 발상은 복잡하게 뒤엉켜진다. 비네의 IQ 테스트는 몇 해를 거듭하여 준비하고 있던 골튼에게 하나의 도구를 준 결과가 되었다. 1869년에 골튼은 「유전적 천재」속에서 다음가 같이 쓰고 있다.‘인간의 천부의 능력은 유전에서 오는 것이며 생물계 전체의 형태나 물질적 특징이 그렇듯이 아주 동일한 제약조건 밑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제시하려고 한다.’ 골튼은 법률이나 문학, 과학이나 고전학 그리고 종교계의 우수한 인사들의 계보를 조사하며 이러한 생각을 추구해 갔다. 1660년부터 1865년 사이에 대법원장(영국에서는 귀족원 의장도 겸임) 직에 있던 사람의 친척 중 80%, 그리고 같은 시기의 판사 친척 중 36%가 역시 우수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