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먼저 10道 문제는 종래부터 논란이 거듭되어 오던 바로, 河炫綱氏와 閔丙河氏는 각각 「地方行政區劃의 道가 아니라 다만 地方巡按區劃으로서의 막연한 區分에 지나지 않는다」 河炫綱, 高麗地方制度의 一硏究(史學硏究 第13, 14號, 1962, 1963)
, 「高麗의 道는 地方行政區劃이 아니고 中央權力이 觀察上 必要에서 設定한 地理的 區分에 不過하며 行政長官을 두지 않고 臨時로 按撫使를 보내어 觀察시켰다」 閔丙河, 高麗時代의 地方制度와 土豪勢力(成均館大學敎論文集 第 8 輯, 1963)
라고 하면서 모두 道는 행정구획이 아니라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道長官의 존재는 인정되고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李基白氏와 邊太變氏는 각각 「全國은 10個의 道로 나누이고, 北方의 鎭을 뺀다면 道 밑에 州와 縣만이 設置된 셈이며, 道의 長官은 觀察使였다.」, 「成宗 14年의 또 하나의 改革의 中心이 된 것은 10道의 設置이다.……그러나 道의 長官으로 觀察使를 比定한다는 것은 後代的인 觀念에 나온 것이고……10道의 長官으로 戰運使를 추정하는 것이 보다 合理的으로 생각된다. ……」고 하였다. 이들은 道長官을 인정하고 있으나, 李基白氏는 觀察使를 道長官이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 변태변씨는 觀察使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임명되었는지는 분명치 아니하나, 그것은 團練使, 刺史 등과 같은 외관이었고, 道의 장관은 宋史 高麗傳의 양言의 말을 인용하여 戰運使를 道長官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高麗 10道는 전국을 지리적으로 구분하여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원(그것이 觀察使건, 戰運使이거나를 막론하고)이 巡廻監督하는 그러한 체제였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