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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 편견의 역사적 기원은 주지하다시피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후삼국의 통일과정에서 당시의 통일신라는 이미 국력이 쇠하여 있던 터인지라 고려에 투항함으로써 왕건은 큰 전투없이 이를 복속시킬 수 있었으나,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였다.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는 약 50 년간 대립하면서 수많은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왕건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다. 이렇듯 힘겨운 대립과 투쟁 끝에 후백제를 통합한 왕건은 항상 후백제 세력을 경계했고 그에 대한 감정도 좋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죽기 직전 후세의 왕들에게 전하는 10가지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훈요십조’이다. 여기서 왕건은 당시에 유행하던 ‘풍수지리설’과 결부하여 ‘훈요십조’ 제8조에서 차령산맥 과 공주강(금강) 이남은 지세가 반대로 흐르니 반역의 기상이 있다 하여 중앙정계의 요직에 등용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하지만 ‘견훤’은 본래 경상도 상주 출신의 농민이었고 당시에 ‘풍수지리설’은 지방호족 등 각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세력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원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왕건의 ‘훈요십조’ 역시 지배집단 내부의 권력투쟁과정에서 경쟁집단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었다. 그런데 이 ‘훈요십조’가 그 후로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조선시대 때에도 지배집단 내부에서 호남세력을 견제하고 차별하는 근거로 계속 사용되었고 현재의 지역적 편견을 만드는데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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