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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달리하면 이런 그의 태도는 시적 화자가 민중 또는 농민들의 구체적인 삶이나 생활 속에 위치하고 있지 못하고, 관찰자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사랑의 노래는 [동구]나 [나루] 등의 부제가 붙은 [섬진강]의 연작에서 비교적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같은 연작에서도 [하동포구]와 같은 시에서는 섬진강의 표상이 민족으로 확대되기도 하며, [호박들]이나 [감전(傳)], [누이에게], [아버지], [맑은 날] 등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형상들을 통하여 자신의 가족사를 들려주고 있다.
`섬진강`을 통하여 농민의 표상인 자신의 가족사를 들려주는 이런 유형의 시는 서술적인 구조를 지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즉 이야기를 통하여 가족이나 이웃의 삶의 이력을 전달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리운 꽃편지}에 수록된 장시인 [아버지의 땅]으로 대표되는 이런 시 형식은 [맑은 날]과 같은 [섬진강] 연작이나 [풀피리]에서 계승되고 있다. 특히 이 서술 구조를 지니는 이야기는 `나`라는 시적 화자를 주로 관찰자로 설정하여, 시의 내용이 되는 민중들의 삶을 객관화시키는 장치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 객관화된 이야기는 서사적 총체성과 서정적 정서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섬진강] 연작을 비롯한 일련의 시에서 그는 과감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시적 언어로 채택하는 한편, 판소리의 사설체나 연속적인 리듬을 반복하는 민요나 가사의 형식을 빌어 반복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즉 가사체의 사설을 반복하거나 말꼬리 잇기의 방식을 쓰고 있는 [밥값], [너무나 그리들 말더라고], 신민요인 아리랑의 풍자적 어법을 쓰고 있는 [시는 서울서 쓰고 사는 건 우리가 살고], 판소리 사설과 같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는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시형식을 통하여 초기시보다는 길고 유장한 시행과 리듬을 보여준다. 또 시의 연을 되도록 구분하지 않는 방식을 통하여 긴 호흡률에 의존하여 시상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