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상은 자신의 모국어를 이렇듯 과학적 사고의 점검으로 건조하게 <순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 표현의 섬세화나 입체화를 기하려는 듯, 어절을 중첩하여 복잡한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시제일호」는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로 시작되고, 「시제이호」는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로 시작된다. 게다가 이 시들은 모두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지팽이의 역사」 같은 산문에서는 결코 종결될 것 같지 않는 문장을 만난다. 물론 이런 종류의 문장들이 어떤 복잡한 내용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어반복의 어절을 겹겹이 이어붙이고 있을 뿐인 이들 문장은 한 시인이 확보할 수 있었던 말의 매마름과 그것으로 담을 수 있는 내용의 궁핍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확인해 줄 뿐이다.
식민지의 시인인 이상에게 이런 종류의 검열과 확인은 그의 문학적 실천이 반드시 거쳐야 할 시련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다음은 그의 시 「절벽」의 전문이다.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은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쳐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로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꽃의 향기>는 삶의 궁핍이 끝나고 자유로운 말이 풍요롭게 개화할 어떤 전망에 대한 예감이다. 그러나 시인은 꽃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는 한, 향기라고 하는 불확실한 감각만으로 그 전망의 진정성을 믿을 수는 없다. 그는 헛된 것일지도 모르는 향기가 스며들기 어려운 깊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상에게서 이 묘혈 파기는 말로 의미되고 기약되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검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