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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소설의 연원을 따지다 보면 도청도설이라는 익숙한 성어를 만나게 된다. ‘길에서 듣고 금방 길에서 말해버린다’는 이 말법이 여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 비하면 소설가가 패관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관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패자에는 서양의 샐러리라는 말의 어원이 소금이듯이 일용할 양식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청도설이라는 말을 들으면 워터게이트사건이니 몰래카메라니 하는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튼 나는 도청도설은 도청도설과 동의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도청도설이라는 성어의 진원은 론어이다. 양화편 십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왈 도청이도설 덕지기야. 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길에서 듣고 그 말을 길에서 금세 말하면 그것은 덕을 버리는 일이다. 그 앞절에는 덕이라는 것과 관련하여 향원 덕지적야라고 나온다. 향원은 시골에서 행세꽤나 하며 내로라하는 인사를 뜻하는데, 대개 호야형의 인간으로 세속에 영합하여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요즘 말로 건달에 해당하는 것 같다. 덕을 버리거나 망치는 것이나, 향원이 도청도설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논리가 된다. 시골 건달들이 말만 많아가지고 들은 소리를 금방 옮기고 하면서 덕을 망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이건 글에서 읽은 내용이건 오래 간직하여 뜻을 궁구하거나 맥락을 음미하지 못하고, 금방 다른 무리를 만나면 쑥덕거리며 전하여 말 풀어버리기를 하는 것이 미덕일 수는 없다. 이런 재재바른 말 주고받기는 덕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근엄한 타이름을 받아도 싸다. 들은 바 말의 아름다움을 본받고 자신의 선하지 못함은 고친다든지, 말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로써 자신을 경계한다든지 하지 않고 금방 남에게 말전주를 함으로써 구설의 자료를 삼는 것은 칭찬할 일이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