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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18일자 중앙일보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던 한국 관련 자료 가운데 「모윤숙 파일」을 입수했다고 보도한다.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부터 6.25가 끝나가는 1952년까지 국내 한 명문여대 출신 여성들로 조직돼 주한외교사절, 미국 고위관리,미군 고위장성 등을 파티에 초대-접대하고 정보를 빼내는 역할을 맡았던 「樂浪(낙랑)클럽」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는 기사였다. 뛰어난 미모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2백여명의 명문여대 출신 젊은 여성들은 접대행위를 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이것은 곧바로 이승만에게 보고되었다. 이승만은 이 정보들을 미국측과의 협상에 유효적절하게 사용했다. 「모윤숙 파일」은 「낙랑클럽」을 조직하고 움직인 책임자가 바로 모윤숙임을 밝혀준다. 미군방첩대(CIC)는 이 조직에 공산주의 첩자가 침투했을 가능성 때문에 비밀리에 수사를 벌이다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1953년 11월 사건을 종결한다.
친일작가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모윤숙은 「옥비녀」 「풍랑」 「정경」 「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과 같은 시집을 남기고, 정치외교 분야와 여성계에서도 크게 활약한 걸출한 신여성임에 틀림없다. 유엔총회 참석후 들른 런던에서 차를 타고가다가 우연히 「국제펜클럽」 간판을 보고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가 자신이 한국의 시인임을 밝히고 이듬해 한국에 국제펜클럽을 설립하는 계기를 만든다. 그녀의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과 타고난
활동성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그녀는 1949년 제4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가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을 세웠으며, 유네스코 제10차 총회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고 1949년 월간지 「문예」 창간, 1954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설립,1970년에는 국제펜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