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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닥 사람들은 화가 끓으면,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물방울 날리는 물결같이 장쾌한 욕설을 퍼부은 다음에 할 말을 한다. 나는 그 갯가에서 나고 자란 탓으로, 바닷바람이 곰솔 숲을 흔들고, 높은 물결이 모래톱이나 바위끝을 두드리며 아우성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말법을 익혔다.말이 곧 생각이요, 생각은 모든 짓거리의 근원이라면, 나는 갯바닥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고향의 언어를 바탕으로 작가 한승원은 노자의 ‘도(道)’나 석가의 ‘반야(般若)’ 같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데, 결국은 자유와 생명력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작가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생명력(氣)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의 다짐을 두고 있기도 하다.
한 작가가 고향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그 고향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어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대단한 가능성이다. 설명이나 전제를 다소 달아야 하겠지만, 소설은 결국 언어의 세계이다. 언어예술의 대표격으로 시를 들지만 소설 또한 언어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의 형상성과 구체적인 삶의 묘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예외를 둘 수 없는 소설의 속성이다. 소설을 언어의 형상물로 볼 때라야 이데올로기적인 추상성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고 소설에 접근할 수 있다.
한승원이 소설에 동원하는 고향의 언어는 그 자체가 소재이며 하나의 세계이다. 이는 한승원의 세계가 언어와 사물이 하나로 엉켜 있는 혼돈의 언어 혹은 어둠과 노을의 메타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양상은 고향이라는 소재, 대상과 주체의 통합성을 본질로 하는 은유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즉 소재 자체가 언어인 셈이다. 즉 한승원에 있어 고향의 언어는 그가 쓰는 소설의 모태이다. 어떤 발표에서 작가 한승원은 “고향 이야기 쓰기는 지워진 역사 복원하기, 혹은 원초적인 생명력과 그 삶의 비극적인 아름다움 건져 올리기”라고 증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