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시인(시인)>이란 슬픈 천명(천명)>을 안고 살았던 윤동주의 시세계를 지배하는 정서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척박한 식민지 현실이라는 테두리와 내면세계 사이에 있는 모순과 부조화는 식민지의 지식인 청년 윤동주를 심각한 자기혐오와 수치심에 빠뜨렸다. 그의 시에 중요한 심상으로 등장하는 <우물>과 <거울>은 바로 개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종족, 역사라는 큰 틀에 비추어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응시, 자기성찰의 매개적 상징물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왕조)의 유물(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 끊임없이 윤리적인 자기완성을 꿈꾸었던 청년시인은 자기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한점의 욕됨조차 용납되지 않으려 했다.
도오시샤(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1943년 7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집에다 귀향을 알리는 전보를 치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귀향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쿄오토경찰서에 검거되어 수감된 것이다. 사상범으로 피체된 그들의 죄명은 일본 형사의 취조서에는 <독립운동>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후 윤동주는 2년,송몽규는 2년 6개월의 언도를 받고 후코오카(복강)형무소에 수용되었다. 명동촌의 집으로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통지서가 날아들었다. <2월16일 동주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부친 윤영석이 당숙 윤영춘을 대동하고 윤동주의 시신을 인수하러 후코오카 형무소로 떠난 며칠뒤에 다시 <동주 …
도오시샤(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1943년 7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집에다 귀향을 알리는 전보를 치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귀향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쿄오토경찰서에 검거되어 수감된 것이다. 사상범으로 피체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