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참여의 희극
이효석이라는 작가를 이야기 할 때 <동반자적>이라는 레테르를 붙인다. <동반자적>이라는 것의 정의를 “카프에서 보기에는 회원이 아닌 작가로서 카프가 가진 동일한 사상성을 가지고 어는 정도는 카프와 보조를 같이 하는 작가”라고 할 때 당시 1930년대에 과연<동반자적>이지 않은 작가가 몇이나 될까? 라고 필자는 반문하고 있다. 1930년대의 시기상황은 누구나 <동반자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즉 ‘작가가 그의 상상력을 아무리 드높게 비상시킬 경우라도 그는 자기가 살고있는 가장 절박한 사회적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효석을 <동반자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필자는 이효석을 한마디로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물러서서 수수방관하기에는 사회적 체면이 있는(그당시 그는 23살의 문학청년이 었으므로) ‘벤치의 맨 뒤에 앉아서 일종의 의무감에서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 어린중학생’의 어정쩡한 그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구호와 실질사이에서의 분열을 의식하고 그것을 가까스로 미봉하려는 흔적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효석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미봉의 흔적이 <동반자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적 필연성에 의한 사회주의적 문학이 아닌 시대사조에 영합하기 위해서 좌익사상으로 자신을 분장한 것이다.
*반사회로의 전환
그러나 이 미봉책은 효석에게는 부담스럽고,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순수문학>이라는 또하나의 미봉책을 마련한다. 이 당시 한국문학의 경향은 현실로 부터 유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시대적 상황이 의도한 대로 흐르지 않고, 이질적인 것들로 인해 결정되어 지는 상황이 만들어 지면서 당시 문학의 대류였던 민족주의문학과 프로문학은 갈길을 잃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현실과 유리된 문학이 들어설 여지가 마련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