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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이처럼 새로운 길을 찾기까지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그를 지배한 기독교의 정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희생 정신을 통하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의 한 특징인 `행동 없음`이 극복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행동하지 못한 지성으로 남았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었던 기독교의 순교와 희생 정신이 문학적 실천으로 발현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십자가에 못밖혔던 예수의 희생 정신처럼 또다른 순교자가 되고자 했던 [십자가]의 시 세계가 이런 그의 선택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희생을 종교적 희생이나 국가나 민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여 무엇인가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가족의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이런 순교자와 같은 희생 정신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원용한 [간]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신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위해 제우스 신의 율법을 어겼다. 그래서 그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처럼 그도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시는 이런 내면의 고백을 표명하게 된다. 철저한 부끄러움을 자각한 자아 성찰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었다. 욕된 삶, 부끄러운 삶을 십자가의 순교 정신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데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희생과 순교로 방향을 잡았지만 행동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유년의 추억 속으로 퇴행할 수도 없었다. 그는 아마 가족을 위해서 살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가 서둘러 짐을 꾸리고 고향행을 결정한 것은 그의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데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희생과 순교로 방향을 잡았지만 행동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