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74년 작품인 [4월]에서는 옆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여인의 머리위에 등꽃의 너울이 내려앉은 듯 등꽃색의 농담이 화면을 지배한다. 작가의 그림네 등장하는 단독 여성상은 주로 얼굴 부분의 전체가 화면에 커다랗게 부각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여성은 외할머니, 어머니,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간 만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상, 즉 섬세한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등을 뜻한다. 보라색의 등꽃 너울로 여성의 근원적 신비성까지 포착하고 있다. 1977년작 [아열대]는 짙은 갈색 바탕에 피어오르듯 꽃병속의 여배우 마릴 린 먼로의 정면상이 드러난다. 꽃으로 변한 먼로,먼로와 같은 꽃,여인과 꽃,그것의 유사성을 ,연관성을 화면에 나타내고 있다. [길례언니],[노오란 산책길],[테베기행],[아리만다의 그늘]등의 여러 모델에서 이런 특징은 드러나고 있지만,마치 고독한 여행자상과 같은 자신의 자화상도 어딘가에 숨겨져있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신비로운 개별 인물상은 흠모하는 여배우나 아름다운 르네상스 회화의 여인상과 같은, 자신의 마음이 분화 되어 있는 다른 여인상을 통해서도 구현되고 있다. 그들의 상을 통해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뇌와 아름다움,슬픔과 운명을 작가는 함께 음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계통의 그림은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중반까지 등장하는 한쌍의 남녀등이 화면을 채우던 특성과는 대조적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독립된 여인상이면서 동시에 힘겨운 삶을 개척해 가야 하는 운명의 아름다운 여인상이기도 하다.
천경자에게 주목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사물이건 동식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마음을 뺏길 만큼 아끼게 되면 그같은 트정의 형상이 끊임없이 그의 화면에 들어온다는 것이다.그와 같은 대상을 그림에서 확인 하면서 작가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무수한 삶을, 시간을 간접적으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