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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에 의해 천황의 이름으로 수행되던 혁명적 조치들은 1870년대 중반이 되면서 점차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신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무사계급들이 반란을 자주 일으켰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끈 반란(세이난 전쟁〔西南戰爭〕)이었다. 이들 반란군은 새로 구성된 신정부군에 의해 가까스로 진압되었다. 한편 신정부를 불신하고 농업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농민들도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는 1880년대에 절정에 달하였다. 동시에 서구 자유주의 사조의 도입으로 고양된 자유민권운동은 점차 헌정(憲政)의 창출과 민선의회를 통한 폭넓은 정치참여를 요구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압력에 대응해 1890년까지 헌법을 제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1881). 이어 1885년에 내각제도를 창설했으며 1886년부터 헌법의 제정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1889년 천황이 국민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한선거에 의해 양원제 의회가 설립되었으며, 1890년 첫 의회가 소집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정치적 변혁과 더불어 경제적·사회적 변화도 이루어 졌다. 아직 일본의 경제는 농업의존적이었지만 정부는 `산업화`라는 목표아래 전략산업과 교통·통신 산업등을 발전시켰다. 1872년 최초로 철도가 개설된 이래 1890년까지 2,250km의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전국 주요도시에.정부의 재정지원과 1882년 도입된 유럽식 은행제도에 힘입어 사기업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