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민족과 국가의 상대성이 천황제 파시즘의 절대성에 녹아 들어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비판하기에는12) 어색한 감이 있다. 민족을 절대화시킬 때, 무엇이든 민족 중심으로 생각하려 할 때, 그래서 민족이 아닌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국궁진췌>의 애국정신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광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천황제 파시즘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국궁진췌>에서 <천황폐하 만세삼창>13)에 이르는 파란(波瀾)과 만장(萬丈)의 길은 우리 문학사가 기록한 가장 극적(劇的)인 훼절(毁絶) 오욕이었다. 식민지 초기, 아직 일본 대화족과 조선 조선족의 상대성이 뚜렷했던 「민족개조론」을 쓰던 시절과 식민지 말기 대화족과 조선족의 상대성이 희미해지고 「황국신민서사」을 외워야 했던 시절은 간단히 말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생겼고 그것은 「무정」에 바쳐진 찬사와 김붕구식의 지탄의14) 거리에 해당한다. 그의 신념은 변한 것이 없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이 변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자주독립>에서 <일본 민족의 승리>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일 뿐. 그의 내면에 수양동우회사건의15) 희생양이 되겠다는 동기가 숨어 있긴 하겠지만 수양동우회 사건이 아니라도 친일에 이르는 그의 길은 똑같았을 것이다. 왜냐. 친일은 심정의 차원이 아니라 논리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옥중에서 신음하는 42명의 동우회 회원을 구출하는 방식으로 행해진 자기희생은 이광수의 인간적인 풍모(風貌)일 뿐이고 기실은 제국주의라는 논리의 세계(낮의 논리16))에서 보면 다른 길로 나갈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다. 일제 말기 3만 명의 죽을 목숨을 살리는데 이광수 자신이 기여했다는 `고백` 또한 제국주의의 본질을 왜곡한 허위의식일 뿐이다. 어떤 이광수라도 국궁진췌의 이광수였다면 분명히 친일의 이광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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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 『해방공간의 현실주의 문학연구』
2)서정주, 「隣保精神」,『매일신보』 1943년 9월 3일.
3)서정주, 「나의 문학인생 7장」, 『시와 시학』 1996년 가을호. p.46.
4)최남선, 「아세아의 해방」, 『매일신보』, 1943년 1월 11일.
5)권순긍, 「파시즘 문학의 해부」, 『실천문학』 1990년 여름호, p.43.
6)임종국, 『실록 친일파』, 돌베개,1991. p.168.
7)이에 대해 임헌영은 2·8독립선언을 기초하고 상해로 도피하던 시절이야말로 변절이라고 단정한다. 춘원의 일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일의 오욕으로 점철(點綴)되어 있어 잠시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던 바로 이 시기, 즉 1919년과 1920년이 변절이었다는 역설적 이광수론은 가장 충격적인 관점이다. 임헌영은 나아가 문화운동 또한 민족개량주의로 호도(糊塗)하기 위한 술책이었으며 총독부와의 밀약이 있었다고까지 말한다.
임헌영,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 『친일파 역사』, 역사문제연구소,1993. pp.97 - 138.
8)이광수, 「민족개조론」, 『이광수문학전집』 10, 삼중당,1974. p.123.
9)국궁진췌 ; 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라 일에 이바지함. 이광수, 「민족개조론」, 『이광수문학전집』 10, 삼중당,1974. p.126.
10)이광수, 「민족개조론」, 『이광수문학전집』 10, 삼중당,1974. p.146.
11)이광수, 「그들의 사랑」, 『신시대』 1941년 3월
12)김윤식 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1977. p.120.
13)1939년 10월 29일 부민관에서 박영희의 사회로 조선문인협회를 결성하고 난 후 이광수는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선도했다.
14)김붕구 교수는 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한 바 있다. 그에의하면 춘원의 친일은 단순한 감정이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고도 반듯한 친일이었다.
15)1937년 도산 안창호 등 수양동우회 회원 150여명이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피검된 사건. 1941년 11월 17일 최종 재판에서 전원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16)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3, 한길사,1986. p.1003.
17)임헌영, 「이광수」, 『친일파 99인』, 돌베개,1993. p.29.
18)장덕순, 『한국문학사』, 동화문화사,1980. p.467.
19)김기진, 『사상계』 1958년 9월 p.234.
20)김기진, 『매일신보』, 1942년 1월 9일.
21)김동환, 『한국소설의 내적형식』, 태학사,1996. p.132.
22)김윤식, 『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 일지사,1992. p.258.
23)이미순, 「팔봉 김기진 문학론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1988. p.2.
24)김승환, 「김기진」, 『청주문학』 1996년 여름호. p.80.
25)최재서, 「국민문학의 요건」, 『국민문학』 1941년 11월 창간호.
26)최재서, 「조선문학의 현단계」, 『국민문학』 1942년 8월호, 김병걸 김규동 편, 『친일문학작품선집』 1, 실천문학사,1987년, p.367 재인용.
27)김윤식, 『한국근대문학사상연구』 1,일지사,1984. p.282.
28)김동식, 「최재서 문학비평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1993. p.83.
29)김재용, 「최재서」, 『친일파 99인』, 돌베개,1993. p.77.
30)김윤식, 『한일문학의 관련양상』, 일지사,1974. p.50.
31)김윤식, 『한일문학의 관련양상』, 일지사,1974. p.102.
32)최원식, 「이인직」, 『친일파 99인』, 돌베개,1993. p.17.
33)애국계몽기 직후의 신소설에서 이미 친일문학의 징후가 드러난다. 애국계몽기의 친일은 그러나, 친일계몽과는 성격이 다르다. 신소설의 작가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서구와 비서구를 구분하고자 했으며 역사의 방향을 모르는 채로 막연하게 아시아가 단결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다음 두 부분이 그 예로써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동양 행복의 기초는 이 곳 승첩에 완전히 굳고 저렇게 철도를 부설하며 시가를 개척하여 점점 변화지가 되어가니 이는 우리 황색인종도 차차 진흥되는 조짐---`(최찬식의 『추월색』 중에서)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이요---`(이인직의 『혈의루』 중에서)
34)친일문학은 애국계몽기부터 지금까지 씌어지고 있는 광의의 개념이다. 하위개념으로 국민문학 황도문학 숭일문학 등이 있다.
35)`국민문학`은 최재서가 주재한 잡지 이름이면서 동시에 일제말 친일문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친일문학의 하위개념인 국민문학은 일본정신에 입각하여 황민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국책에 적극호응하며 일본어와 일본적 사상과 생활을 지향하는 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박경수, 『한국근대문학의 정신사론』, 삼지원,1993. p.138. 참조.
36)호테이 토시히로(布袋敏博), 「일제말기 일본어 소설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1996. p.8.
37)임종국, 『친일문학론』, 평화출판사,1986. p.16.
38)백철 교수는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명명했는데 그 이전을 광명기라고 명명할 수 없듯이 암흑기라는 명칭은 옳지 못하다. 친일문학을 `현실합리화`라든가 `암흑`으로 간접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시기를 광명기나 암흑기로 규정하려는 것은 도남의 방법처럼 역사유물론의 생명체이론에 근거했을 때 조심스럽게 써볼 수 있는 용어가 아닐까 한다.
백철,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1980.
장덕순, 『한국문학사』, 동화문화사,1980. 참조.
39)김대행, 「암흑기의 친일문학」, 『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1982. p.645.
40)김승환, 「1996년 8월, 친일문학론을 다시 읽는다」, 『민족예술』 1996년 8월호, p.13.
41)조연현, 「아세아부흥론 서설」, 『동양지광』, 1942년 6월호. 『친일문학작품선집』2 p.360 재인용.
42)조연현, 「아세아부흥론 서설」, 『동양지광』, 1942년 6월호. 『친일문학작품선집』2 p.358 재인용.
43)김 철, 「한국보수우익 문예조직의 형성과 전개」, 『실천문학』, 1990년 여름호. p.17.
44)구중서, 「친일문학」, 『한국근현대문학연구입문』, 한길사,1990.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