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어느덧 서울 귀향을 결행하는 `나`에게 친구는 조소가 아닌 부드러운 눈빛으로 손등을 두드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친구 또한 혼란스럽고 불안정하다고 고백한다. `나`와 친구는 들어섰던 모험길 한 중간에서 갈리지만, 그들이 보았던 공포와 불안의 실체는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의 서울 복귀는 당당히 돌아가는 영웅 이야기의 플롯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루함 이었고 초라함 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집단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충성해야만 한다. 결국은 `무리에 끼워줌`의 치욕적이면서도 달콤한 `기호`인 황연배의 `미지근한 농담`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복종해야만 한다. 결국 `나`는 타자의 가치를, 또는 황연배의 이미지와 표상 체계를 수용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이나 불길함을 해소할 수 있다. 존재의 균열도 봉합되고 정체성의 위기도 소멸된다. 그러나 한정 조건이 없을 리 없다. 친구에 대한 기억을 애써 억누른다는 전제하에서 만이다.
`나`는 팔 년 여의 세월이 흐른 뒤, 만화가게 주인이 되어버린 친구를 찾는다. `나`는 반쯤 폐인이 되어버린, 그리고 차츰 시들어가는 친구를 대면하는 순간 `나`의 부채의식은 죄의식으로까지 번진다. `나`는 부채의식을 덜기 위해서라도 친구에게 서울로 함께 올라 갈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종용하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친구의 대답은 간명하다. 나이가 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 이는 `나`가 생각하듯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농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곧 친구가 지금 나이 들기를 기다린다 함은, 단순히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그림이 화가의 나이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세태를 비꼼과는 거의 상관없다. 그것은 삶에 대한 탕진과 자기 소멸에의 불길한 욕망의 은유적 표현일 따름이다. 여전히 고립감과 공포라는 괴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들어 가면서도 제도와의 맞섬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