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일본은 1931년의 동북사변을 전후하여 식민지인 조선에 대해 무단통치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조선의 프로문학운동도 타격을 받게 된다. 두 차례나 있었던 카프맹원 검거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으로, 첫 번째의 검거사건은 당시 동경에서 이북만 등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동경파 기관지 ‘무산자’를 임화, 안막 들이 국내에서 비밀리에 배포하다가 발각됨으로써 박영희, 김기진, 임화, 안막, 윤기정, 송영, 이기영 등 70여명이 검거된 사건인데 이들 카프 매원들은 모두 석방되었으나 카프 지도부의 공백상태와 회원의 동요 등 적지 않은 손실이 있었다.
두 번\쨰 검거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신건설사 삐라 사건 즉 신건설의 삐라를 소지한 학생이 전북 금산에서 발각된 사건이 이유로 되어 있으나 그보다는 그 이면에 놓인 당시의 사회상황이 더욱 중요한 이유가 된다. 1934년 2월부터 그해 12월까지 80여명이 검거되었는데 1935년 겨울에는 전원이 집행유해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카프 몰락의 진정한 원인은 카프 자체 내의 내분에서 찾을 수 있다. 1931년 소장파들의 전면적인 진출과 함께 구카프계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는데 이것은 처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