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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 직후 시문단의 상황
해방 전 5년 동안은 우리 문학의 공백기나 다름없었다. 1939년부터 문화말살정책으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어 40년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문장≫ 지가 폐간되더니 ≪인문평론≫은 국민문학으로 개제, 친일 문학의 온상으로 둔갑함으로써 사실상 폐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같은 언론 탄압으로 문인들은 문학 활동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시의 문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친일 문학만 허용되었던 일이다. 그리고 39년에 결성된 조선문인협회는 군국주의적인 일본에 협력하도록 하기 위하여 43년에는 조선문인보국회로 이름까지 개칭되었으며, 언론 탄압으로 42년 10월에는 한글학회사건도 일어났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식민지 치하에서 억압되었던 모순과 갈등이 일시에 분출되었으며, 극도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문학의 측면에서 보자면, 광복 이후는 해방의 감격과 더불어 정치투쟁의 시기였으며 식민지 시대의 문학적 활동에 대한 자기 반성의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자기 반성이 문학작품까지 긴밀히 연결되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있어서의 문인의 자기반성은 이른바 봉황각의 좌담회 빼고는 거의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인데, 이 좌담회의 기본 태도는 조선 사람 치고 일본에 협력적 태도를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해도 무방한 것>, 따라서 <준열한 자기비판을 한다는 것은 결코 불명예스러움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중성≫1946.2. p.43). 김남천, 이태준, 한설야, 이기영, 김사량, 이원조, 한효, 임화 등이 참석하고, 김남천이 사회를 맡은 이 좌담회는 심도 있는 양심의 문제까지 거론되긴 했으나 그러한 양심의 문제가 작품의 형태로 발전하기에는 크게 미흡하였는데, 그러한 죄의식에 대한 고백적 형식의 결여 상태는 우리 문학의 썩 낯선 부분이었던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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