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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유물론적인 규정
자연은 맑스가 다루었던 이론적 주제가 아니었으며, 자연에 관해서는 한 편의 글도 없다. 그에 비해 엥겔스는 ꡔ반-듀링론ꡕ과 ꡔ자연 변증법ꡕ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방대한 분량의 자연에 관한 원고들을 남겨 놓았다. 맑스주의 이론 논쟁사에서 엥겔스에 의해 정식화된 변증법적 유물론이 맑스의 철학적 이념과 일치하는지 여부가 큰 쟁점거리가 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엥겔스의 글들은 고찰에서 제외시킨다.
따라서 이제 그의 자연 개념을 고찰하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그의 글들 속에 언급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진술들을 자료로 하여서 그의 자연 개념을 구성해 내는 작업이 된다. 맑스의 사상에서는 소위 “청년 맑스”와 “자본론”을 대표로 하는 그 이후 시기 사이의 연속과 단절이 큰 논란이 되어왔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시기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전제에 서서 논의를 진행한다.
맑스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인간 사회와 그 역사적 발전을 유물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유물론적 역사관 내지는 역사적 유물론의 정립에 있었다. 인간 사회와 전혀 무관한 독립적인 자연에 대한 연구, 즉 변증법적 유물론 내지 자연 변증법과 같은 것은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철학적 개념들은 사회와 역사의 유물론적 해명을 위해서 동원되었으며, 그런 한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의 구성 개념들로 기능했다. 자연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맑스에게서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구성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범주 안에서 의미도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자연 개념이 유물론적 역사관을 구성하는 한 개념으로 설정되고 있다고 해서, 이 때 본래적인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부차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논해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