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시는 꽃이 피었다가 지는 자연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직접 토로하지 않고, ‘꽃’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런 방식은 현대시뿐만 아니라 고전 시가에서도 널리 쓰였던 시적 기법으로, 시인이 자신의 외로움을 서술하는 경우에 직접적으로 외롭다고 서술하지 않고, 자기의 외로움과 유사한 사물이나 상황을 빌어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 시가 깊은 산 속에 홀로 피었다가 지는 ‘산유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연의 산유화를 통하여 시인과 시인이 속한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꽃’으로 표현된 이들은 현실적인 영욕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고 있는, 그러면서도 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이를 통하여 가장 맑고 순수하게 살고 있는 산유화 같은 우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를 감상함에 있어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내용을 누가 진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 태도는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시에 진술된 바에 충실하게 접근해 보자. 시에 형상화되고 있는 주된 대상은 ‘꽃’이다. 그리고 이 꽃과 같이 살고 있는 ‘새’를 만날 수 있다. 이것들은 시의 표면에 직접적으로 제시된 존재이다. 이런 시적 대상을 시의 서술 주체로 보는 태도 역시 피상적인 접근 태도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2번째 연을 다시 읽어보면, ‘저만치’ 떨어져 있는 꽃을 보는 또다른 주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주체는 저만치 있는 꽃과 산새를 바라보고 있다. 꽃과 산새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 주체는 궁극적으로는 이런 자연 대상이 누리고 있는 삶의 방식에 동감을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