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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원군 집정기 동안 ‘안동 김문 및 노론 세력이 축출되었고, 대신 소외받던 인사들에 대해 당파를 초월한 능력 위주의 고른 등용’이 이루...
본문/내용
그동안 대원군 집정기 동안 ‘안동 김문 및 노론 세력이 축출되었고, 대신 소외받던 인사들에 대해 당파를 초월한 능력 위주의 고른 등용’이 이루어졌다든지, 혹은 ‘남인정권 혹은 남인내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대원군에 대한 최초의 저작인 박제형의 「 근세조선정감(상)」을 보면 대원군은 구페일소를 과감하게 추진했으나 그 용도를 개화, 진보하는데가 아니라 구질서를 복구하는 무용한 곳에 써버렸다고 평한다.
해방후 대원군을 평가하는 세가지 흐름을 보면 첫째 대원군을 근대화의 선구자로 평하며 대원군의 정치를 혁신정치로 보는 것이고, 둘째 일본학계에 의해 대원군 정권의 성격을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 전개 측면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보수적 개혁정권으로서 기본적으로 복고반동이었다는 시각이다. 대원군은 근대적인 개혁자가 아닌 실용주의적인 보수주의자에 불과하며 대원군 개혁정책의 실패원인은 량반세력의 저항과 유교적 도그마,정치적인 리더쉽의 허약성에서 찾고 있는데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 조선의 전통적인 정치세력의 운영원리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대원군 집정기에 세력재편구상에 있어서 그는 왕족 및 남인을 육성하고 노론세력을 타파해야한다는 인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이상(전통 왕조질서 재건)을 공유할 수 있었던 집단을 노론이였다는 점에서 그이 이상과 세력 재편 인식은 모순되었다.
중앙당상관의 인적 구성과 당상관직 교체실태를 분석하므로써 당시 지배세력의 실상을 추적해볼 때 지배세력을 지속성 측면에서 본다면 국왕의 종친인 선파및 전주 이씨 출신 인물들의 대거 진출-이것은 대원군이 왕실권위 강화 정책및 자파세력 양성을 종친에서 구한다는 전략의 일환이다-하였고 구성에서 볼 때 안동김문출신 인사들이 여전히 고위직에 재임용되었으며, 고위관료의 진출이 여전히 성관과 가문에 좌우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원(1991),『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울;웅진출판(주)
▷안외순(1990),『대원군 집정기(1864-1873) 정치적 지배세력에 관한 연구-중앙당상관의 구성과 성격을 중심으로』,이화여대 1989년도 석사학위 청구논문
▷정보일(1982),『대원군(이하응)의 대서원 정책에 관한 연구』,건국대학교 석사학위 청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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