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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에서 도교에 영향관계를 살펴보면, 당송문화의 변천이라는 거대한 흐름속에서 분명한 변화가 발생하는데, 세 가지 서로 다른 발전 방향이 그것이다.
도교의 본래 면모인 재초, 부록, 연단 등의 의식과 방법으로 사람들(주로 황제나 상층귀족 관료계층)의 생존과 향락에의 욕망에 영합하는 것 말고도, 한편으로는 불교의 철리에서 흡수한 사상과 도교에 잔존하고 있는 노장사상과 양생사상을 강조시키고 자기 마음의 청정공적, 자기 마음의 한적담백을 특징으로 삼아 사대부 계층에 침투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의 인과응보 윤회사상 등과 융합함과 동시에, 유가의 윤리강령과 결합하여 도교에 있는 귀신에 대한 미신과 종교적 윤리성분을 강조시켜 선에는 선한 응보가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는 것을 간판으로 하여 미간의 침투하였다.
당시 사대부들은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고 이상을 실혀하는 것은, 자신의 본래적인 심성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되찾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유가는 인간의 욕망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은 번뇌이니 또한 끊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도교에서도 인간의 정욕은 진귀를 소멸시킨다고 하였다. 유가는 욕망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성과 경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거듭 반성하라고 하였다. 불교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청과 정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밝게 하고 성을 드러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교는 장생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심리적 생리적 안정과 한적은 유지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무위 무념하기를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심에서 시작된 인생이상의 추구는 곧 내적으로 정신과 마음에 대한 추구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구는 다시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억압하고, 그 욕망을 승화시켜 인격의 최상적인 완선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 마음 속의 충동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