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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공 위의 결렬
남북분단국가가 성립하게 된 첫번 째 계기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에 있다.38도선 이남에 진주하여 조선총독부의 항복을 받은 미군은 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든 조선인민공화국은 물론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고 바로 군정을 실시했다.
이에 앞서 미군은 서울에 진주할 때까지 조선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갖지 못했다.하지 사령관은 한때 일본의 조선통치를 그대로 두려고 했으나 들끓는 민심과 총사령부의 압력에 군정을 실시했다.따라서 조선총독부의 행정기구와 그 조선인 관리를 그대로 인계받아 운영했다.
한편 38선 이북의 소련군은 일본의 군인,경찰관,행정관을 억류하는 한편 친일세력을 제거하고 인민위원회를 각 도마다 결성하여 행정권을 이양했다.
연합국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비로소 공개했다.첫째,한반도에 민주주의적 원칙 아래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둘째,임시정부수립을 원조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셋째,미국,영국,소련,중국 등 4개국 정부가 공동관리하는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 등을 결정,발표했다.3상회의의 결정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우익의 반탁과 좌익의 찬탁이 맞서서 대립했고 3상회의 결정에 따른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서울에서 열었다.공동위원회의 구체적 사업은 첫째,3상회의 결정에 따른 조선의 정당,사회단체와의 협의에 의한 임시정부수립 둘째,수립된 임시정부 참여 아래서의 4개국 신탁통치 협약작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