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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째 의병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오랫동안의 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해 군사력을 조직화한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게 되었고 이에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의 무력한 관군은 패전을 거듭해 서울까지 함락되었고,일본군이 순수사이에 우리의 국토를 짓밞고 많은 생명을 헤치자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의 고장을 지키기 위해 비릇된 것이다.일본군은 주요도로를 다라 진격하고 요충지에만 군을 주둔시켰기 때문에 산간벽지를 비릇한 대부분의 지역은 일본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는데 ,이 지역은 의병활동의 온상지가 되었다.그 중 경상도 의령에서는 유생 곽재우가 사재를 털어 의병의 군자금으로 삼고 의병을 일으켜 낙동강을 따라 왕래하면서 왜군을 무찔러 홍의장군으로 통칭되었고,그 외 많은 유생과 승려들이 궐기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그들의 전과가 관군을 크게 앞질렀다.이와같이 의병이 눈부신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관리의 위신이 실추된다가 일반인들이 그들을 불신하고 의병장의 대다수가 전직관리 이었거나 유학자들로서 학식과 덕망이 출중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큰 명문거족들이었던 까닭에 그들이 궐기하면 그의 씨족이나 주종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그 밑으로 모여들었고,유량민이나 관군을 기피하는 자들도 협세하여 큰 세력을 형성할수 있었다.
구한말의 의병활동은 크게 1894~1896년의 제 1차 의병전쟁,1905~1910년의 제 2차 의병전쟁과 1907년 고종황제의 퇴의와 군대해산에 대한 최후의 항쟁인 제 3차 의병전쟁으로 나눌수 있다.
제1차 의병전쟁은 1895년 10월의 민비시해와 11월의 단발령시행을 계기로 하여 개항이후 축적되어온 반일감정이 반일 의병투쟁으로 바뀌면서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다.제1차 의변전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