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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 있어 신고전주의 양식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다비드(Jacque Louis David, 1748-1825)의 경우, 초기 작품에는 18세기 프랑스의 관능적인 로코코 취미가 잔존하고 있었으나 1775-1871년 로마유학 시기 이후 신고전주의화풍을 발전시켰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5년),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은 푸생적인 요소-즉 구도는 화면과 평행해서 부조와같이 전개되며 인물은 彫像과도 같이 확고하고 부동의 느낌을 준다-뿐 아니라 예리하게 집중되어 정확한 음영을 이루는 채광법은 카라밧지오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 그림은 새로운 이상적 양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시기 그의 최고 걸작품인 <마라의 죽음>(1793년)을 그렸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중 하나였던 마라를 기념하기 위한 이 그림에는 헌신적인 심상과 역사적인 설명이 함께 녹아 있다. 다비드는 미술이란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이며 미술작품의 목적은 눈을 즐겁게 해줄뿐 아니라 영혼 속에 파고들어 현실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인상을 마음속에 새겨준다 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나폴레옹 대관식>(1805-7년)에서는 이전의 차가…
참고문헌
불트만과 바움게르텔의 입장을 정리해 볼 수있다.
구약에서의 모든 전제된 율법들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또한 마찬가지로 신약은 구약을 복음의 율법은 전제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찌메를리 는 실패 및 파멸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약과 신약의 단절면을 단적으로 이해시키고 있으며 구약 그 자체를 이스라엘 역사로 단정함으로써 그 율법안에서 복음 죄와 용서의 모습을 똑같이 발견할수 있음(430/327)과 아울러 종말적 희망까지도 예언주의를 통하여 발견함으로 완전하게 다차원적인 시대 인식과 그 차원 속의 세계를 폐쇄완전 세계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구약
에대한 이해를 제시하였다. 또한 이렇듯 단절된 역사와 사관 및 신관의 구약과 신약을 설정함에 있어서 그 연계성과 또한 관계성을 구약의 신앙은 희망이고,신약의 신앙은 그와는 달리 성취를 가지고 있는 신앙이다.(고후 5:19) 즉 바움게르텔은 구약과 신약의 어떠한 역사적 연속성도 모두 부인 할수 있느냐 근본적인 약속(구원사적 약속과 그 실존적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속성을 볼 수있다 라고 정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를 통하여서 구약의 말씀은 활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약의 인간에게도 신약의 인간에게도 동시에 하나님은 능력이다. 라는 야웨에 대한 신약에서의 인정은 공인하며, 또한 영속적인 그의 권능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종교사학적 제약성과 자신의 자기 이해를 가진 구약적 인간에게 그것이 가지는 권능때문에 그것은 구약에서 야웨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이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뜻으로 구약의 말씀으로써만 ---즉 복음 밖에서에 있는 증인으로서만 우리에게 복음에 대한 증언할 수 있다. 는 한계를 두고 있는 것도 간과하여서는 않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