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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웠던 중국이 열강에 침략당하는 아편전쟁과 에로호 사건이 문득 생각난다. 그때 단편적으로 배웠던 아편전쟁을 영화를 통해 더욱 자세히, 실감나게 알 수 있었다. 1800년대 당시 청나라는 쇄국정책으로 광저우항에서만 국한적인 무역을 했고 영국은 광저우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무역했다. 중국은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수출했고 영국은 모직물과 향료 정도를 수출할 뿐이어서 차와 비단을 수입하기 위해 많은 은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1832년까지 중국무역의 독점권을 갖고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산(産)의 목화와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함으로써 차의 구매자금을 조달하려고 하였다. 특히, 그들이 전매제도 아래에서 중국인의 기호에 맞도록 정제하여 모험적인 민간상인에게 팔아넘김으로써 중국에 밀수된 아편의 양은 해마다 급증하였다. 1776년 이전에는 매년 200상자(1상자의 무게 약 60㎏) 정도의 인도산 아편이 의약품으로서 중국에 수출되고 있었으나 1800년에는 2000상자, 30년이 되자 약 2만 상자, 동인도회사의 중국무역 독점권이 폐지된 이후인 37년에는 미국상인에 의한 밀수를 포함하여 3만 9000상자나 되는 아편이 중국으로 수출되어 200만 명이 넘는 아편흡연자가 생겨났다. 청나라는 1796년 이후 여러 번 아편수입금지령을 내렸으나 부패한 관료기구의 방해로 인해 실패하였다. 중국에 대한 아편밀수는 그 무렵 영국자본주의의 사활이 걸린 중요성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한편 중국에서는 1820년대 이후 아편수입 때문에 다량의 은이 국외로 유출되고 그 때문에 은값이 폭등하여 재정·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실질적으로 세 부담이 증대하고 세수는 곤란해져 국고 보유량은 날이 갈수록 감소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