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민영 대금업의 배경과 성격은 첫째, 地理적으로 백성들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둘째, 사원은 신도의 神心을 대금의 전제로 했다. 신심으로 인한 대금은 급전을 필요로 하는 백성에게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민영전당포에는 특별한 금지 품목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저당 할 수있어서 담보물의 종류가 다양했다.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었냐가 문제일 뿐 저당 잡을 수 없는 종류의 물건이란 없었다. 넷째, 唐은 사회적 신분 계급이 분명했던 사회로 만약 良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자나 이를 알고도 돈을 빌려주는 자의 사회 계급을 모두 강등 시키는 엄벌에 처하는 식으로 이를 금지해서 다소 백성들이 안심해 하였으나 根원적으로 이를 막지는 못하였다. 다섯째, 율령의 체계화에 따라 정부에선 이자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하고 계약서를 쓰도록 하여 쌍방간의 계약 내용을 문서화 하기 시작 하였다.
민영 전당포의 출현으로 백성들은 생활상의 金錢적인 어려움을 해결 하는데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허나10%를 받는 너무 높은 이자는 부단과 원성을 백성들에게 사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월 이율 5%를 초과하지 못하게 했다.당대에 들어서는 정부가 대금업에 개입 하게 되었다. 당대에는 제국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기상과 더불어 대금업도 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함을 보인 시대였다. 사원의 질고에서 벗어나 민영전당포와 공해본전을 비롯한 관영 대금업이 각기 성행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