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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는 아버지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의 작품에 친숙했다. 10살 때 빈으로 가서(1821~23) 살리에리, 모짜르트로 이어지는 빈 피아노 악파의 최후의 대표자였던 거장 칼 체르니에게 배우고 1822년 12월에 데뷔했다.
체르니의 영향을 받았던 젊은 날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은 당시의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미 1830년(리스트는 19세였다)에 저주의 첫머리에 있는 몇 마디에서 그가 자신의 전생애를 통하여 계속 간직하게 되는 대담성이 증명된다. 마찬가지로 1834년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의 1곡을 조성의 지시 없이 가장 현대적인 수법으로 박자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쇤베르크나 드뷔시로 이어지는 그의 최후의 작품에까지 계속된다. 리스트는 19세기를 박차고 20세기의 격동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고 점차 사랑의 꿈 Liebestraume이나 갈롭풍의 헝가리 랩소디 몇 곡의 작곡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갔다.
프란츠 리스트를 둘러싼 무수한 전설 중에서도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그의 우정은 중요한 에피소드이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의 인간적인 행동은 작곡가로서의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의론의 여지가 있는 표절 문제를 새삼스럽게 문제삼는다는 것은 무의미하겠지만,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이 오늘날 시련의 시기를 벗어난 것에 대해 혁명자 리하르트 바그너가 스스로 호기있게 공언할 정도로 뻔뻔스럽지는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롭다. 라인의 황금 이후 바그너의 작품에는 얼마간의 조성의 자유를 엿볼 수 있지만 조적인 움직임은 언제나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