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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을 하게 되는 것이 1970년대 초까지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렇게 절대적 빈곤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도시로 가서는 미군 기지촌이나 특정지역에서 집단을 이루며 포주와 연결되어 행해지는 매춘을 `전통형 매춘`이라고 한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한국경제의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적 고용정책으로 여성노동력이 파출부, 행상, 하청 등의 비공식적 노동부문 등에 제한되어 있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채, 접객서비스업 부문의 여성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새롭게 창출되었다.
경제구조의 불균등 발전과 상관없이 접객서비스업이 비대화되고 새로운 직종인 호스티스, 마사지걸, 안마사, 면도사 등에 여성이 대거 고용되면서 간접 매춘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외간상으로는 공식적으로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사업장내의 노동자이지만 실상은 매춘여성과 다름없는 신종직업을 `산업형 매춘`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산업형 매춘이 확대 되는 것은 독점재벌에 대한 정부의 특혜지원으로 중소기업이 이들 독점재벌과의 경쟁에 서 도태하게 되자, 중소기업가들은 다른 쪽에 눈을 돌려 안전 투자로 기업보다 훨씬 손쉽 고,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향락·접객서비스 업종에 모여들게 된 것이다. 이리 하여 향락산업은 날로 번창일로를 걷게 되었으며 그에 따른 매춘여성의 수요를 창출시키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이 되어야 비로소 기지촌에 이러한 `산업형 매춘`이 나타나게 된 것은 정부 가 미군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그동안 기지주변을 강력한 개발규제조치로 묶어 놓았었고, 기지촌이 정부가 직접 총제하는 공창지역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보건소나 관청 같은 기존의 행정조직만으로는 기지촌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겉으로는 기지촌 매춘여성 의 자치…
80년대 후반이 되어야 비로소 기지촌에 이러한 `산업형 매춘`이 나타나게 된 것은 정부 가 미군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그동안 기지주변을 강력한 개…
2. 한·미 공조하의 기지촌 정화 캠페인
⑴ 기지촌 캠페인이 일어난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