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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 가난한 시대를 깨우치는 존재의 목자
이 글은 경상대신문, 1995년 3월 20일(화요일) 제8면(학술) [세기의 석학]
기획란에 실린 이성환 교수(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의 글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이데거는 1945년 12월 릴케 20주기(週期)를 맞아
기념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 시대를 `가난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왜일까?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갑자기 가난을 들고 나오다니.
1989년 9월 26일에 출생하여 1976년 5월 26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가장
큰 격변기를 살아낸 하이데거는 왜 우리 시대를 `가난한 시대`로 체험했을까?
이는 하이데거가 현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로부터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현대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을 무엇으로 이해하며, 역으로 현대의 삶의 양식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 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물음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양식을 `기술`이라고 본다.
근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기술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되었으며,
우…
규정하는 유일한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근대 이전의 자연을 지배하던 신은 신성을 떠났으며, 세계는 신이 떠난 황혼으로부터 점점 어둠의 시대로 빠져들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기술의 지배로 말미암아 자연의 근거가 사라지고 없는 어둠의 시대를
일컬어 `가난한 시대`라고 했다.
17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던 근대 과학은 실재하는 모든 것들을 지각하는 것과 지각되는 것,
즉 주관과 객관으로 구분하였으며, 데카르트는 이를 철학적 사유로 체계지었을 뿐만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를 존재자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그로 인해 자연은 의식하는 주체의 표상이 되고, 표상적 대상이 된 자연은
의식적 주체에 의해 지배되고 처분된다. 기술은 바로 이같은 세계를 지배하고
처분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러한 세계의 대상화와 기계화는 필연적이고,
의식하는 주체는 마침내 기술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