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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이 잡지 『개벽』창간 4주년 기념모집 광고에서 「오빠의 비밀편지」로 3등으로 당선 되면서 그의 문단 활동은 시작 되었다. 민촌은 조명희의 알선으로 1926년 프로 문학의 구심점이었던 『조선지광』사의 기자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25년 이기영은 그의 동료인 조명희,최서해,송영과 더불어 카프` 창건사업에 직접 참가하였다. 프로문단의 최연장자로서,최고의 작가로서 민촌은 군림한다. 카프`의 창건은 조선문학 예술발전에 전환점이 될 뿐만 아니라 민촌 이기영의 창작생활과 세계관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의 조선에 대한 탄압과 약탈이 더욱 강화 되면서 식민지 조국의 현실은 점점 더 일제자본주의 확대됨에 따라 일본에 경제적으로 예속 되어갔다. 일제는 1931년 여름에 이기영을 포함한 제1차 카프 지도부에 대한 총 검거로 구속 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1932년 초순에 출옥한 후 민촌은 단편「묘양자」,「부역」의 창작을 끝마치고 감옥에서 구상한 「서화」를 집필한다.1934년의 제2차 카프 검거시에는 형을 받고 2년여의 옥살이를 경험한다. 그는 이 시기에 조선 농민생활에 대한 대서사시적 작품 「고향」을 구상한다. 「고향」은 <<조선일보>>에 1933. 11. 15 - 1934. 9. 21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농민소설로서 카프계 작가 중에 쓴 작품으로 그때까지의 작가 개인으로서 작품의 총화일 뿐 아니라 193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농민소설이라고 본다. 카프는 신경학파 문학으로 불리는데 새로운 성격의 문학임을 보여준다 1910년대까지 이광수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