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나는 윤희누나에게 심부름 좀 갔다오라는 형의 부탁에 형도 놀랄 만큼 수월하게 대답을 한다. 내가 이렇게 수월하게 대답하는 것은 내가 윤희누나를 강간하려는 형들의 음모를 들어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형들의 욕망을 내가 동일하게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형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를 어른스러움의 징후로 보면서 그 욕망을 그대로 복사해 내고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 이후 나는 자신이 윤희누나에게 갈 경우 윤희누나가 할 수도 있을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가 이에 대해 답을 한다. 즉 나는 형들의 욕망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서 나아가 형들의 욕망을 미리 알아내고 그것을 선점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너무도 영악하여 그 속에서 어린아이다움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乾]의 주인공인 나에게 어른의 세계는 욕망을 전해주는 중개자, 욕망의 모델이다. 둘 사이의 관계에 있어 욕망의 중개는 일방적이다. 나는 어른의 세계를 모방하기만 할 뿐 모방행위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욕망의 대상을 놓고 어른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내가 친구들과 경쟁하는 모습과는 구별된다. 다음의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아까 올 때보다 더 힘껏 달렸다. 내 뒤를 애들은 우 따라왔다. 애들은 기묘한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나는 이빨을 악물고, 애들의 맨 앞에 서서 달리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껏 달렸다.
이는 빨치산의 시체를 보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나는 빨리산의 시체를 맨 먼저 보기 위해 누구보다도 더 앞서 달린다. 이것은 나와 친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쟁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른들로부터는 욕망을 일방적으로 배울 뿐이었지만 친구들과는 동일한 대상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