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길의 끝이 길의 시작임을 말하는 시인들이 있다. 이 말은 끝난 길에 서서 그 길에 묻은 자신의 흔적과 함께 새로운 ‘한발짝’을 내딛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주체의 적극적인 행위를 압축한다. 백무산이 ꡔ인간의 시간ꡕ 백무산, ꡔ인간의 시간ꡕ, 창작과비평사, 1996.
에서 보여주고 박노해가 자신이 걸어온 길의 끝, 경주 남산자락에서 ꡔ사람만이 희망이다ꡕ 박노해, ꡔ사람만이 희망이다ꡕ, 해냄, 1997.
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길을 찾아 내딛는 그들의 모색 정신이다.
이 책들이 공통적으로 표상하는 것은 ‘반성의 정신’, ‘인간의 문제’, ‘노동의 정신’이다. 이들의 사유는 이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운다. ‘반성의 정신’은 이들이 넘어서려 했던 현실의 질곡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문제’와 ‘노동의 정신’은 ‘반성의 정신’이 추상하는 사유의 골격을 민중과 노동(자)라는 구체적 현실태로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권의 책과 이전 시세계와의 사이에 놓인 단절의 질이다.
이들이 맨몸으로 기어온 시대가 한번 커다란 단절을 겪었으며, 백무산과 박노해가 시의 몸으로 삼고, 그리고 시로 뚫고 나아가는 것도 이 단절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단절을 통해서 단절을 넘어선다. 시가 시인의 말이고 몸일 것이니 이들의 연속과 단절이 시속에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과연 어떻게 있는가? 다시 말해 길은 어떻게 시작될 것인가?
단절과 변화를 화두로 하는 이들의 시를 읽으며 80년대와 90년대의 연속성을 말하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 논의가 지금 이 현실 속에서의 삶의 태도를 세워보려는 행위의 일환으로 제기될 경우 문제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