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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의 극단적인 두 가지 관점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가 지니고 있는 맨 첫 번째 문제점은 이제까지 많은 이론가들이 너무 지나치게 극단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파악해왔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있어 이론가들이나 비평가들의 입장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어 진다.
무조건적인 거부반응
서구에서 문학과 관련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최초의 중요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50년대 말 미국에서 였는데 당시의 논의는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빙 하우의 “대중사회와 포스트모던한 소설”과 해리 레빈의 “모더니즘은 무엇인가?” 라는 글에서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기에는 나약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문화는 모더니즘의 활력을 와해시켰다고 보았다. 클로드 로슨을 비롯한 몇몇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포스트 피플이 즐기는 기괴하고 유치한 일종의 게임‘이라고 하며 파리나 뉴욕에서 수입된 지적 유행정도로 밖에 보지았았으며 워런 몬태그등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은 궁극적으로 체제 순응적이고 현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부르조아 자유주의의 교묘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입장
그러나 60년대 초에 들어와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합 핫산(침묵의 문학),레스리 휘들러(새로운 변종들), 수잔 손탁(침묵의 미학), 리차드 포와리에(낭비의 문학), 존 바스(소모의 문학)등을 통해 새로운 현상들에 대해 좀더 호의적이며 다양한 평가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레스리 휘들러같은 경우는 ‘모더니즘 소설은 이제 완전히 사망하였으며 그것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이제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 탄생했다’고 주장하며 지나칠 만큼 찬양하는 태도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