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엽기 신드롬은 권태롭고 짜증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망의 공적적 표현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는 인간에게 현실 세계는 지킬 박사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억압당하는 하이드적 광기를 표출하고 싶은 욕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상 속에서 혐오스럽다고 배척되는 것 또는 엉뚱하거나 기발할 정도로 역설적이라 여겨지던 모든 것, 바로 엽기적인 것들이야말로 매력적인 탈출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의 유희와 패러디를 동반한 블랙 유머 그리고 하드코어적인 이미지의 탐닉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쾌감과 해방감을 만끽한다.
특히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대로 열린 사이버스페이스야말로 거침없는 엽기성을 발휘시킬 수 있는 최고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엽기적인 일들은 사이버스페이스로 들어가면 훨씬 많이 발견된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충격적인 사진들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방문객이 들끓고, 욕으로 인사하고 욕으로 대화를 나누는 ‘욕 대화방’이 만들어진다. 야쿠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 일본어를 배우는 ‘엽기 일본어’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사이버 감옥에 혐오하는 사람을 가둬놓고 고문을 가하는 사이트도 나타나고, 어린이들의 다정한 친구 텔레토비가 살인마로 변신한 ‘엽기 텔레토비’ 만화까지 통신망에 떠다닌다. 엽기 매니아들은 엽기적인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린 200마리와 질럿 100마리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 등의 엉뚱한 실험을 담은 스타크래프트 엽기 길드가 생겨나고, 부셔먹는 라면과자 ‘뿌셔뿌셔’를 끓여먹는 ‘엽기요리 리포트’도 등장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바야흐로 ‘엽기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