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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흔히 `역사의 세기`라고 한다. 이는 낭만주의, 국민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아 사물을 민족적, 역사적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역사학은 계몽주의 역사학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계몽주의 역사학이 가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부정의 입장에 선 데 대하여 낭만주의 역사학은 중세를 동경하고 그리스, 로마에 관한 훌륭한 역사 서술을 남겨 놓았다.
이 시대 최대의 역사가는 Ranke(1795-1866)이다. 그는 문헌학적 방법을 근대사 연구에 응용하여 사실의 고증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그 해석에 있어서도 세계사적 방법을 주장하여 한 시기를 그었다. 『프로이센사』, 『16-17세기의 프랑스사』, 『17세기의 영국사』, 『세계사』는 랑케의 대표적 저서이다. 그는 현실의 정치에 대하여는 소극적 객관적 입장을 취하였으나 그의 제자들은 당시 일어나고 있던 독일의 통일운동에 협조하기 위해 역사학에 정치의식을 끌어넣었다. 그들은 프로이센 학파 또는 小독일 학파라 하는데 Droysen(1808-1884), Sybel(1817-1895), Treitschke(1834-1896), Mommsen(1817-1903) 등이 그 대표자들이다. 드로이젠은 『헬레니즘사』, 『프로이센 정책사』, 등을 내어 프로이센의 독일 사상의 사명을 鼓吹하고, 지벨은 『독일 제국 건설사』, 『사학 잡지』등을 내었다. 트라이치케는 『19세기 독일사』, 몸젠은 『로마사』를 저술하였다. 영국의 Macaulay(1800-1859)도 낭만주의 역사학에 속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버클은『영국 문명사』에서 지리적 환경설에 기초를 둔 유럽 근세사를 서술하고, 스위스의 Burckhardt(1818-1897)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사』, 『그리스 문화사』등을 저술하여 文化史를 개척하였다.